먼저 밝히는 것은, 십자가의 모양이 어떠한 것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기둥이든, 교차된 모양이든 성도의 구원에도, 성화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제로 십자가의 모양은 어떠했을까요?
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어디에도 십자가의 모양을 묘사하거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은 중요치 않기에 성경이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십자가의 모양에 대하여 논하려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십자가 모양에 대한 단서는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나쳐 잊어버릴 법한 곳에 십자가의 모양에 관한 암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 베드로와의 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도 예수님과 함께 잡혀서 처형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그 분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만 아마도 배반자라는 자괴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의 생업이었던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가게 됩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몇 명과 함께 배에 올랐으나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날이 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닷가에 선 어떤 사람이 "고기가 있느냐!" 고 묻습니다. 없다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잡을것이다"라고 일러줍니다. 그 말대로 하자, 그물에 고기가 가득하여 들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하고 말하자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예수님께로 가고, 다른 제자들은 뒤따라 오게 됩니다. 그리고 재회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 장면부터의 성경 기록을 옮겨보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21:8~17>
자포자기한 상태로 고기잡이로 돌아가려던 베드로에게 찾아온 예수께서, 그를 사명자로 거듭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 베드로의 미래를 예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말씀에서 우리가 논하는 "십자가의 모양"을 암시하는 단서가 나타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21:18>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죽음을 "팔을 벌린다"라고 표현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하게 된다는 말씀인줄 바로 알아듣고, "팔을 벌린다는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 때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팔을 벌린다"라고 표현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것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바로 알아듣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모양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어떠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기둥모양이 아닌, 가로와 세로의 나무가 교차된 모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초기 기독교의 동굴벽화를 보아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잘 아는 †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거듭 말하지만 십자가에서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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