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수난시대
한겨레 21에 실린 칼럼 "아버지 하느님 엄마 하느님"도 그 중 하나이다.
"성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으로 시작해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며, 구약의 하나님은 사악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은 그와는 전혀 다른 좋은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 안타깝게도 그 칼럼의 필자는 성경을 너무 "조금만" 읽어본 것 같다.
구약의 하나님은 저 필자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서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출애굽기 20:5)라고 대놓고 말하는 하느님이다. 구약의 하느님은 자기를 섬기는 놈은 어떤 악행을 해도 축복하고 자기를 거스르는 놈은 바로 살아도 저주하고 징벌하는, 권위적이며 포악한 마초 아버지 하느님이다. 바로 오늘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일없이 죽이는 극우 시온주의자들의 하느님일까?
구약에 악행을 저지르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 등장하던가? 금시초문이다.
토라를 기록하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추앙받는 "모세"도 한순간 자기 감정대로 노를 발한 댓가로 벌을 받아, 간곡한 회개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불순종의 댓가로 왕위를 빼앗기고 전쟁에서 죽었고, "다윗"도 살인과 불륜의 댓가를 혹독히 치루어야 했다. 어디 이 뿐인가? 열왕기, 역대기의 주된 내용들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대한 거듭된 징계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서들의 내용은 또 무엇인가? 범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입맛대로 받아들인다. 칼럼의 다음 부분을 보자.
예수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선포했다. 예수의 하느님은 잘나고 힘세며 늘 승리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못나고 약하고 늘 지기만 하는 자식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그가 사람 대접 받으며 살길 갈망하는 하느님, 엄마 하느님이다. 죄를 후손 삼대에까지 갚고 마는 하느님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뉘우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느님,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체면도 품위도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고상한 말이나 쓰며 으스대는 놈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야단치는 하느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또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함께 맞물려 작동한다는 걸 깨우치게 하는 하느님이다.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맞물려 작동한다는 출처모를 이상한 소리는 논외로 하고, 그 앞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정말 저런 인간적 모성애의 화신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인 관념의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으로 볼 수 없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저 칼럼의 필자가 좋아하는 "모성"의 하나님의 모습이 많은 곳에서 나타나며, 신약에서도 두려운 하나님의 모습은 많이 나타난다. 오히려 구약의 가장 큰 메시지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 이지만, 신약의 마침은 구약의 그 어떤 심판보다 준엄한 최후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심판을 피하라고 엄히 경고하고 계신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마태복음 5:29~30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된다.
하나님은 아버지(부모)이자, 임금이자, 조물주이자, 재판장이다. 어느 말씀은 취하고, 어느 말씀은 버린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아버지(부모)로서의 하나님만을 받아들인다면, 영영한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이 당연하다. 반대의 경우엔 오직 두려움만 있고, 사랑의 순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꼴통과 좌빨로 분열되어 있다. 꼴통과 좌빨이 믿는 한국 기독교도 꼴통과 좌빨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다. 위의 칼럼은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전형적인 좌빨풍의 왜곡이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불교든, 이슬람이든 모두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시고 결코 심판따위는 없으며,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것 같다.
성경은 꼴통도 좌빨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예수님은 창녀를 용서하셨지만, 토색한 세리도 용서하셨다.
과거, 예수님의 어리석은 제자들도 똑같은 우를 범했다. 예수님이 언제 개혁정권을 세울것인가? 총리는 누가 맡고, 장관은 누가 할 것인가? 등등...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그런데 있지 않았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요한복음 18:33~3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 ~ 8
장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사는 것이 못마땅하면-본인 역시 못마땅하다-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면 될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열정으로 인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성경을 각색해서 저마다 좌빨복음, 꼴통행전을 써대는 일은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