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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00:08 발행/기독교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모양은 가로와 세로가 교차된 모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셨던 십자가의 모양이 "†" 라는 증거가 없고, 가로로 교차된 나무가 없는 세로기둥의 모양이었을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처형에서 기둥모양의 형틀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특히 인터넷에서 특정 이단종파에서 기둥모양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먼저 밝히는 것은, 십자가의 모양이 어떠한 것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기둥이든, 교차된 모양이든 성도의 구원에도, 성화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제로 십자가의 모양은 어떠했을까요?

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어디에도 십자가의 모양을 묘사하거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은 중요치 않기에 성경이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십자가의 모양에 대하여 논하려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십자가 모양에 대한 단서는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나쳐 잊어버릴 법한 곳에 십자가의 모양에 관한 암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 베드로와의 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도 예수님과 함께 잡혀서 처형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그 분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만 아마도 배반자라는 자괴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의 생업이었던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가게 됩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몇 명과 함께 배에 올랐으나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날이 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닷가에 선 어떤 사람이 "고기가 있느냐!" 고 묻습니다. 없다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잡을것이다"라고 일러줍니다. 그 말대로 하자, 그물에 고기가 가득하여 들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하고 말하자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예수님께로 가고, 다른 제자들은 뒤따라 오게 됩니다. 그리고 재회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 장면부터의 성경 기록을 옮겨보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21:8~17>


자포자기한 상태로 고기잡이로 돌아가려던 베드로에게 찾아온 예수께서, 그를 사명자로 거듭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 베드로의 미래를 예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말씀에서 우리가 논하는 "십자가의 모양"을 암시하는 단서가 나타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21:18>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죽음을 "팔을 벌린다"라고 표현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하게 된다는 말씀인줄 바로 알아듣고, "팔을 벌린다는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 때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팔을 벌린다"라고 표현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것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바로 알아듣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모양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어떠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기둥모양이 아닌, 가로와 세로의 나무가 교차된 모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초기 기독교의 동굴벽화를 보아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잘 아는 †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거듭 말하지만 십자가에서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입니다.

↑초기 기독교 동굴교회의 모자이크 벽화. 역시 십자가의 모양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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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il
2009/03/13 04:28 발행/기독교
"못말리는" 이란 3류 코미디 영화의 제목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필자는 검색용으로는 주로 "구글"을 이용하지만 포털사이트로는 "다음"을 애용한다. 가끔 시간이 날 때에는 "신지식"에 들르곤 한다. 관심분야가 생기면 파고드는 성격때문에 몇몇 분야에 나름대로 조예를 가진 편이라 어떤 질문에는 답변을 해 줄 수가 있어서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

신지식에 들를 때마다 눈에 띄는 질문이 있는데, "안상홍 증인회" 혹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는 이단 사이비 종교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잠깐 "이단"에 대해서 사설 좀 풀고 넘어가겠다.
근래의 한국사회는 개신교에 대한 눈초리가 곱지 않다. 필자도 개신교의 변질과 타락상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는다. 교회 세습, 재물과 불륜을 둘러싼 분쟁, 편향된 정치적 행보 등... 이는 많은 의식있는 크리스찬들이 누구보다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세간에 보도되는 많은 개신교 관련 추문들 중 상당수는 이단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일반인들이 어느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 "이단" 이라는 개념이 기독교(개신교+천주교)외에서는 좀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단도 결국은 기독교 아니냐"고 말하는데 이들은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집에서 한 20미터만 걸어가면, 다 쓰러져가는 집에 "XX보살"이 있다. 그리고 바로 길 건너에 "ㅇㅇ대사"가 있다. 이단을 기독교라고 한다면 이 사람들이 전부 불교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성경적으로도 불신자나 이교도는 사랑과 전도의 대상이지만, 이단은 상종치도 말라고 엄히 경계하고 있을 정도다.

잠깐 잡설이었고, 다시 "안상홍 증인회" 혹은 "하나님의 교회" 등으로 부르는 이단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신지식에서 관찰되는 패턴은 이렇다.
질문자가 안상홍 증인회에 대해서 정말 궁금한 듯이 질문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내 친절하고 자상한 답변이 올라온다.
다음의 한 예를 보자.


그리곤 아래로 안상홍 증인회의 교리 설명이 죽~ 이어진다.

안상홍 증인회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검색해보면 온통 그 사이비 종교에 대한 글 뿐이다.
그건 해당 종교 교인이 자기 종교에 대한 열심으로 그렇다고 치고, 위 스샷에서 유의해서 볼 부분이 있다.

바로 질문자의 아이디가 "비공개" 설정이라는 점이다.

호기심에 필자는 신지식 사이트에서 "안상홍"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검색했다. 글이 주루룩 나온다.
다음을 보자.


거의 모든 글이 질문자 "비공개" 였다.
이 쯤 되면 상황이 어떻게 된 시츄에이션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줄 안다.

이 포스트는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천주교인도, 무신론자도 볼 수 있다. 나는 기독교를 믿고,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타종교와 사이비 종교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네 기와집 처녀보살과 석가모니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럼 이 "안상홍 증인회" 라는 곳은 어떤 곳이길래 "이단", "사이비" 라고 말하는가.
교주 "안상홍"을 재림예수라고 주장하고,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 또한 재림주라던 교주가 죽자 그가 부활한다고 주장했으나, 교주의 부활도, 시한부 종말 일시도 모두 불발로 끝나자 다시 날짜를 수정하는 등 이단 사이비의 전형을 보여주는 종교이다. 구체인 교리로 들어가면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식함이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참고로 "어머니 하나님", "하늘 어머니" 등의 소리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십중팔구 "안상홍 증인회"이다.

이 외에도 널리 알려진 이단 사이비로는 국제적인 엽색행각으로 매스컴을 오르내린 JMS(정명석), MBC에서도 그 폐해가 보도되었던 "신천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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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il
2009/02/17 18:15 발행/기독교

성경의 수난시대

오늘의 한국 교회가 위기라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다보니 저마다 질세라 한국교회에 대해 한마디씩 던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열정과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어린 목소리도 있는가 하면, 교회도, 성경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짧은 지식으로 "교회란 이런 것이고, 성경은 이런 것"이라고 용감하게 재단하는 모습들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겨레 21에 실린 칼럼 "아버지 하느님 엄마 하느님"도 그 중 하나이다.


"성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으로 시작해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며, 구약의 하나님은 사악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은 그와는 전혀 다른 좋은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 안타깝게도 그 칼럼의 필자는 성경을 너무 "조금만" 읽어본 것 같다.


구약의 하나님은 저 필자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서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출애굽기 20:5)라고 대놓고 말하는 하느님이다. 구약의 하느님은 자기를 섬기는 놈은 어떤 악행을 해도 축복하고 자기를 거스르는 놈은 바로 살아도 저주하고 징벌하는, 권위적이며 포악한 마초 아버지 하느님이다. 바로 오늘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일없이 죽이는 극우 시온주의자들의 하느님일까?


구약에 악행을 저지르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 등장하던가? 금시초문이다.

토라를 기록하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추앙받는 "모세"도 한순간 자기 감정대로 노를 발한 댓가로 벌을 받아, 간곡한 회개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불순종의 댓가로 왕위를 빼앗기고 전쟁에서 죽었고, "다윗"도 살인과 불륜의 댓가를 혹독히 치루어야 했다. 어디 이 뿐인가? 열왕기, 역대기의 주된 내용들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대한 거듭된 징계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서들의 내용은 또 무엇인가? 범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입맛대로 받아들인다. 칼럼의 다음 부분을 보자.

예수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선포했다. 예수의 하느님은 잘나고 힘세며 늘 승리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못나고 약하고 늘 지기만 하는 자식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그가 사람 대접 받으며 살길 갈망하는 하느님, 엄마 하느님이다. 죄를 후손 삼대에까지 갚고 마는 하느님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뉘우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느님,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체면도 품위도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고상한 말이나 쓰며 으스대는 놈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야단치는 하느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또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함께 맞물려 작동한다는 걸 깨우치게 하는 하느님이다.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맞물려 작동한다는 출처모를 이상한 소리는 논외로 하고, 그 앞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정말 저런 인간적 모성애의 화신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인 관념의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으로 볼 수 없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누가복음 12:5)고 말씀하셨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저 칼럼의 필자가 좋아하는 "모성"의 하나님의 모습이 많은 곳에서 나타나며, 신약에서도 두려운 하나님의 모습은 많이 나타난다. 오히려 구약의 가장 큰 메시지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 이지만, 신약의 마침은 구약의 그 어떤 심판보다 준엄한 최후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심판을 피하라고 엄히 경고하고 계신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마태복음 5:29~30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된다.
하나님은 아버지(부모)이자, 임금이자, 조물주이자, 재판장이다. 어느 말씀은 취하고, 어느 말씀은 버린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아버지(부모)로서의 하나님만을 받아들인다면, 영영한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이 당연하다. 반대의 경우엔 오직 두려움만 있고, 사랑의 순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꼴통과 좌빨로 분열되어 있다. 꼴통과 좌빨이 믿는 한국 기독교도 꼴통과 좌빨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다. 위의 칼럼은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전형적인 좌빨풍의 왜곡이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불교든, 이슬람이든 모두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시고 결코 심판따위는 없으며,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것 같다.


성경은 꼴통도 좌빨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예수님은 창녀를 용서하셨지만, 토색한 세리도 용서하셨다.
과거, 예수님의 어리석은 제자들도 똑같은 우를 범했다. 예수님이 언제 개혁정권을 세울것인가? 총리는 누가 맡고, 장관은 누가 할 것인가? 등등...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그런데 있지 않았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요한복음 18:33~3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 ~ 8

장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사는 것이 못마땅하면-본인 역시 못마땅하다-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면 될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열정으로 인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성경을 각색해서 저마다 좌빨복음, 꼴통행전을 써대는 일은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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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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